BGM : Studio EIM, Vindictus - Regina BGM super ext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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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유럽 중세시대의 종말을 고하였고 근대사회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이 시작은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의 회귀를 의미하였다.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에서는 철학과 윤리사상, 종교와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시스템까지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중해 무역항로와 실크로드 무역항로의 장악은 유럽 세계로 하여금 대항해시대로 나아가도록 몰아가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서인도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경유하는 인도 무역항로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가톨릭을 수호한다는 명분에 빠져 유대인을 배척하고 숙청하는 최악의 수를 둔 스페인은 결국 제해권을 영국에 빼앗기게 되며 네덜란드는 독립하게 되면서 무너지게 된다. 이번 Part 4에서는 개신교의 성장과 산업혁명간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전 글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 원래 종교전쟁과 왕권신수설을 설명하려고 하였으나 내용이 너무 많아지고 의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될 것을 염려하여 해당 내용은 넘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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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단 두 종교의 공통점은 바로 '원죄론'이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죄를 지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절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게 되었다. 그 댓가로대가로 남성은 평생 일을 해야 하는 벌을 받는다. 일을 해야 그 대가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성은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고통의 벌을 받게 된다.
<출처 : 나무위키 원죄론, https://namu.wiki/w/%EC%9B%90%EC%A3%84(%EA%B8%B0%EB%8F%85%EA%B5%90) >
그러나 이 원죄론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방향은 두 종교가 완전히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원죄론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느님의 대리자인 '교황'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를 섬기면서 살아가도록 강조한다. 또한, 현시대에서 '교황'과 '성직자' 그리고 '영주'가 된 인물들은 전 시대에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노역을 하며 잘 살았기 때문에 현 시대에 교황과 성직자 그리고 영주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가톨릭은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다. 현생에 노력하면 다음 생에는 권력을 갖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는 농노들로 하여금 현재의 노예 생활은 전생의 죄악 때문이라고 믿게 하였으며 평생 농노의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개신교에서는 인간이 원죄론을 가지고 태어난 것까지는 같다. 그러나 현생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교회를 섬기면 현생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고 권력자가 될 수 있다고 설파한다. 하지만 철저한 금욕과 자신을 단련하도록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농노와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유럽인에게 '나도 현생에서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노력하면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자본주의는 똑똑한 노동자가 필요하였다.
그렇다. 어쩌면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유럽 중세시대부터 이 글을 시작한지도 모른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발생하였다.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제 이 기계를 설계하고 기계의 설명서를 읽고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똑똑한 노동자가 필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바로 노예 해방이다. 노예 해방을 통하여 자본가가 얻으려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째, 개신교의 사상을 주입한다. 현생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며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러한 효과는 이들을 똑똑한 노동자가 되게 한다. 글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기계를 작동하는 설명서를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한 노동자는 기계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둘 째, 단순 노동을 하는 일용 근로자의 필요성이다. 노예를 거느리는 것은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여야 하므로 유지비용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아주 값싼 노동의 대가만 지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경시킨 것이다.
상상해 보자. 노예가 해방되었다고 해서 수십 년간 노예로 살아온 자들의 심정을 말이다. 이제 노예가 아니기에 주인의 집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돈이나 식량을 벌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들은 노예에서 빈민으로 추락하게 된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들은 다시 주인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제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주인은 이들에게 식량과 보금자리를 제공할 필요가 없어졌다. 결국 이전에는 노예로 고생했던 이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살아야 하는 일용 근로자의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하여 시장이 필요하였다.
산업혁명을 통하여 서양 열강들은 더더욱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열은 산업혁명은 대량 생산한 제품을 소비할 시장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원소재를 저렴하게 구입할 시장도 필요하였다. 그 시장은 바로 식민지 개척을 통하여 획득하고 있었다. 서양 열강들은 식민지 개척을 위하여 필요한 자본은 모두 유대인에게 빌린다. 식민지 개척과 유지를 위하여 서양 열강들은 천문학적인 군자금을 사용하였다. 만약 전쟁에서 패배라도 한다면 유대인에게 빌렸던 자금을 갚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자금을 갚지 못하는 서양 열강의 각종 이권을 차지하게 되며 세력을 키웠다. 이들은 글로벌 자본 세력이 되었으며 전 세계의 경제와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반인에게 기회를 주었다.
노예 해방의 목적은 선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예 해방으로 인하여 많은 일반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개신교의 사상 아래 현생에 집중하여 노력하면 그 과실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대한민국도 한국전쟁 이후 경제발전을 시작하여 현재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해진 부자들이 많아졌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노력한 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어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지금도 빈부격차는 존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기준,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울 곳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이 없다. 지금의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인 기준이다. 전체적인 삶의 질은 향상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필자는 이제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개똥 철학과 답을 내려고 한다.
1. 자본주의란 자본가 혹은 자본을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 집단이 세계 국가의 정치 및 경제에 관여하고 지배하는 시스템이다.
2. 자본주의의 역사는 고대 및 중세시대부터 은행(고리대금)을 업으로 삼고 있던 유대인이 가톨릭 종교 세력과 절대왕정 및 제국주의 세력을 상대로 싸워 이겨나가는 역사이며 이들 세력을 자본의 아래 무릎을 꿇게 만든 과정을 보여준다.
3. 산업혁명의 시작은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개신교의 사상적 배경을 토대로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으며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이 각 국가에 도입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본주의 이해하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자본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과 사건은 정말 많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우리 삶의 근간이 되어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았을 때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살아간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인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내었다. 산업의 발전은 인류의 생활에 편리함을 가져왔다. 다양한 산업군의 발전은 인류의 생존율과 수명을 상승시켰다. 그러나, 이 과실을 모든 인류가 맛본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에는 아직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 또한, 산업의 발전이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이제 변화해야 할 때이다. UN의 목표인 기아가 없는 세상, 모두가 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상 등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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